西町と阿部勘酒造

 

西町
 江戸時代前期の天和年間(一六八一~一六八四)の塩竈町の絵図には西町が描かれておらず、その頃にはまだ西町はなかったらしい。その後、七曲坂(ななまがりざか)入口から表坂(おもてざか)入口にかけての道の両側に家並みができ、西町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
 元禄年間(一六八八~一七〇四)にはここから赤坂を抜けて仙台に向かう街道も開通し、赤坂橋まで町並みが伸びたという。
 この頃、西町の七曲坂の下あたりに鹽竈(しおがま)神社で使う材木を保管する藩の御材木蔵(おざいもくぐら)があった。それが亨保十三年(一七二八)に御宮町(おみやまち)に移された際、その蔵の古材を与えられた三十四人が「高無人頭(たかなしにんとう)」と呼ばれてここに住み着き、荒物(あらもの)屋、旅籠(はたご)屋、菓子屋(名物の花昆布・水飴・あられ)などの商売を始めた。さらに文政年間(一八一八~一八三一)の塩竈には西町を中心として遊女屋兼宿屋が二十六軒もあり、遊女が二百十三人ほどいたという。このように当時の西町は仙台からも客を集める当地でも有数の歓楽街になっていた。

仙台藩の酒造統制と塩竈
 江戸時代、仙台藩では酒造量統制のため酒屋数を制限しており、清酒屋は仙台城下に三軒、九郡に各二軒、二十一郡に各一軒まで、濁酒屋は仙台城下では町ごとに各一軒、在方(ざいかた)では一宿に各一軒までと決められていた。しかし、塩竈は特別で享和二年(一八〇二)の記録によればここに清酒屋が七軒あり、うち三軒は藩から特別に免許された増酒(ましさか)屋であった。また清酒屋のうち鹽竈神社に献上する御神酒を醸造するものは御神酒酒屋と呼ばれ、門前町の老舗邉見(へんみ)屋が代々これを務め、白坂の斎藤屋らが断続的にこれを補佐していた。

阿部勘酒造
 同家の伝承によれば初代の勘九郎(享保四年没)が享保元年(一七一六)頃に酒造りを始めたのが始まりという。当初は濁酒(どぶろく)を造り、その酒樽を担いで町内を一日に七回廻って売り歩いたことから「七廻り勘九郎」と呼ばれたとの逸話が残る。その後、阿部家は塩竈でも有数の醸造元となり、明治維新以後も勘九郎を襲名しながら御神酒をはじめとする酒造りを続け、現在で十四代目に至っている。

 平成三十年十月  文 NPOみなとしほがま 斎藤善之

○英語(English)
Nishimachi and Abekan Brewery

Nishimachi
The town of Nishimachi was not on a map of Shiogama dating early in the Edo period (1681-1684) as it did not yet exist. It was when rows of houses were built on both sides of the road between the Nanamagarisaka (Hill of seven turns) and Omotesaka (Front hill) that this area was first named Nishimachi, or west town.
The road to Sendai via Akasaka was opened in 1688 – 1704 and they say that the town grew all the way to Akasaka bridge.
In this period, near the base of Nanamagarisaka hill was a storehouse used to hold wood for Shiogama shrine. When it was relocated to Omiyamachi in 1728, the 34 people who received the old timber from the storehouse became known as the Takanashi-ninto and settled here. They started a number of businesses including a DIY store of the day, a tavern, and a candy store (selling traditional sweets including hana konbu, mizu ame and arare). In a later period (1818-1831), the Nishimachi area became the center for inns and brothels, with 26 separate establishments and about 213 prostitutes. At that time Nishimachi became a place with multiple entertainment districts and attracted both local customers and people from Sendai.

Sendai Domain, Sake Brewing Controls and Shiogama
During the Edo period due to the Sake brewing controls, Sendai Domain limited the number of sake breweries. There could be no more than 3 Seishu (refined sake) breweries in the Sendai castle town area, two in each of 9 districts, and one in each of the 21 districts. One Nigori (cloudy sake) brewery in each district of Sendai were permitted, and up to one brewery per tavern in rural areas. However, Shiogama had a special status and records from 1802 indicate it had 7 Seishu breweries with 3 Mashisakaya breweries that obtained special license from the Sendai Domain. Of the Seishu breweries, those that provided sacred sake for Shiogama-jinja Shrine were called Omikisakaya (sacred sake breweries). Shinisehenmi stores (stores that has been operating for more than 100 years) in the Monzenmachi area has been serving the sacred sake for generations with intermittent assistance from Saitoya in Shirozaka.

Abekan brewery
This family brewery was said to begin in 1716 when the founder Kankuro began making sake. Initially he made Doburoku (a rustic, unfiltered sake) and carried the sake barrel on a sales route around the downtown 7 times in a single day, earning the nickname “7 Rounds Kankuro,” in an anecdote that survives from that time. The Abe family became one of the leading brewers in Shiogama and following the end of the samurai era, they continued as a brewery, and adopted the Kankuro name for a new sacred sake. Today, Abekan brewery continues in its 14th generation as a family business.

October 2018
Saito Yoshiyuki
NPO Minato Shihogama

○中国語(中文)
西町與阿部勘造酒

西町的由來
從江戶時代前期,天和年間(1681~1684年)鹽竈町的繪畫中,似乎還沒有看到西町。之後,從七曲坂入口到表坂入口之間,兩邊道路漸漸蓋起房子,這個區域也開始被稱為西町。
元祿年間(1688~1704年)從這裡經過赤坂前往仙台的道路開通後,周圍的街道便漸漸發展到赤坂橋。
大約在這個期間,西町七曲坂下方處,有一座仙台藩所屬的木材倉庫,裡面所保管的木材為建造嚴竈神社時的「御木材」。享保13年(1728年)當倉庫將遷移至御宮町時,把木材分給了34名「高無人頭」並在此蓋屋居住而形成聚落,這個區域漸漸地出現了雜貨店、客棧、果子店(名產花昆布・麥芽糖・米果)等各種商店。到了文政年間(1818~1831年)鹽竈的街道更發展為以西町為中心的26家妓院兼客棧,據說當時約有213名妓女在此工作。就這樣,當時的西町也吸引了從仙台專程來的客人,成為當地著名的歡樂街。

仙台藩實施的造酒統一制度與鹽竈
江戶時代,仙台藩因實施的造酒量統一制度,同時也限制酒店的數量。例如規定清酒屋數量,仙台城下可設三家,有九個郡可各設兩家,有21個郡只能各設一家。濁酒屋則規定仙台城下每一個町可各設一家,在方地區每一個住宿處只能各設一家。但是,其中只有鹽竈的酒屋數量卻與規定不符,根據享和2年(1802年)的記載,這裡的清酒屋共7家,其中有3家是經過仙台藩特別通過許可的增酒屋。另外,清酒屋裡還有一家是專門釀造「敬神酒」的,專門釀造獻給鹽竈神社的「敬神酒酒屋」。門前町的邊見屋,就是世世代代執行這個任務的老舖,而位於白坂的齋藤屋,則是斷斷續續的輔佐過此任務。

阿部勘造酒
根據這個家族流傳下來的說法是,第一代的勘九郎(享保4年歿)於享保元年(1716年)左右開始從事釀酒的工作。當初釀造的是濁酒,勘九郎每天都會擔著酒桶在街道中走七次,邊走邊叫賣,因此得了一個「七圈勘九郎」的稱號而留下佳話。此後,阿部家在鹽竈也成了主要的釀酒商之一,明治維新之後也繼承了勘九郎的商號,從事「敬神酒」的釀造直到現在,目前由第十四代繼續傳承中。
平成三十年十月 NPO港都鹽竈 齋藤善之 文

○韓国語(한국어)
니시마치와 아베칸 주조

니시마치(西町)
에도(江戸) 시대 전기, 덴나(天和, 1681~1684) 시절의 시오가마마치 회도(평면도)에는 니시마치가 그려져 있지 않으며, 그 당시에는 아직 니시마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나나마가리자카 언덕 입구부터 오모테자카 언덕 입구에 걸쳐 길 양측으로 가옥이 늘어서면서 니시마치라 불리게 되었다.
겐로쿠(元禄, 1688~1704) 시절에 이 지역부터 아카사카를 거쳐 센다이로 향하는 가도가 개통하면서 아카사카바시 다리까지 마을 거리가 형성되었다.
당시, 니시마치의 나나마가리 사카노시타 근방에 시오가마 신사에서 사용하는 재목을 보관하는 어재목(御材木) 곳간이 있었는데, 이는 번(藩, 영주가 다스리는 영지)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 곳간이 교호 13년(亨保, 1728)에 오미야마치로 옮기면서 곳간의 고재(古材)를 하사받은 34명이 <다카나시닌토(高無人頭)>로 불리고 이 땅에 정착하면서 잡화상, 여관, 과자점(명물 하나콘부(다시마), 물엿, 쌀과자)등의 장사를 시작했다. 분세(文政、1818~1831) 시절의 시오가마에는 니시마치를 중심으로 기방 겸 여관이 26채나 존재하였으며 기녀가 213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당시의 니시마치는 센다이로부터도 손님을 모으는 이 지역에서도 유수의 환락가로서 번창했다.

센다이번(仙台藩)의 양조 통제와 시오가마
에도(江戸)시대, 센다이번은 양조량 통제를 목적으로 주점 수를 제한했다. 청주 주점은 센다이 성읍에 3채, 9군에 각 2채, 21군에 각 한 채까지, 탁주 주점은 센다이 성읍에 마을당 각 한 채, 자이카타(在方)에서는 객사 1채당 주점 한 채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호 2년(享和, 1802)의 기록에 의하면 시오가마에는 특별히 청주 주점이 7채 있었는데, 그중 3채는 번(藩)으로부터 특별히 면허를 받은 마시사카야(増酒屋)였다. 또 청주 주점 중 시오가마 신사에 헌상하는 어신주(御神酒)의 양조는 오미키사카야 (御神
酒酒屋,어신주주점)라하여 몬젠마치(신사나 절 주변에 형성된 마을)의 전통 노포 헨미야(邉見屋)가 대대로 이 일을 수행했으며 시라사카의 사이토야(斎藤屋) 등이 단속적으로 보좌했다.

아베칸 주조(阿部勘酒造)
아베칸 주조의 전승에 의하면 초대 간쿠로(勘九郎, 교호(享保) 4년 사망)가 교호 원년(享保, 1716) 무렵에 양조를 시작한 것이 아베칸 주조의 기원이라고 한다. 애초는 도부로쿠(탁주)를 양조하여 그 술통을 짊어지고 마을을 하루에 7번씩 돌아다니며 행상을 했다 하여 <나나마와리 간쿠로(7번 회유하는 간쿠로)>라 불렸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그 후, 아베 가문은 시오가마에서도 유수의 양조장 종가로 성장하였으며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도 간쿠로의 이름과 더불어 신에게 헌상하는 어신주(御神酒)를 비롯한 양조 제조를 계승해 현재 14대째에 이른다.

2018년 10월 글 NPO 미나토 시호가마 사이토 요시유키